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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가 코카의 아성을 무너트린 비결은

펩시가 코카콜라 제국을 넘어서는 데는 100년이 걸렸다.

70년간 저가 전략으로 2인자 자리를 확고히 한 뒤 30년 만에 1위까지 올라섰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과정이 너무 극적이었기에 마케팅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펩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93년. 코카콜라에 딱 7년 뒤진다. 하지만 펩시는 100년간 코카콜라의 등을 보고 다녀야만 했다. 코카의 '선점효과'가 그 만큼 막강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까지 펩시는 코카콜라와 가격은 비슷하지만 품질은 그저 그런 콜라에 지나지 않았다. 회사의 경영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펩시는 주저 앉지 않았다. 1933년 중대 결단을 내렸다. 콜라의 가격을 코카콜라의 절반 수준으로 내린 것이다. 회사의 자금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박리다매로 전환한 셈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중요한 판단이 숨어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냉철하게 판단하면 그 정도 가격이 적당하다는 게 경영진의 생각이었다.

그 결정은 펩시콜라를 확고한 2인자 반열에 올려 놓았다. 로얄 크라운과 닥터 페퍼 같은 군소 업체들이 펩시의 저가 전략에 무릎을 꿇었다. 1위로 가는 징검다리를 확보한 셈이다.

이후 순풍에 돛단배처럼 나아갔다. 광고로 이미지를 올리며 가격도 서서히 높였다.

그러던 중 1970년 위기가 닥쳤다. 원료 값이 크게 오른 것이다. 2위를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펩시의 경영진들은 또 한번 중대 결단을 내린다. '콜라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우선 코카콜라와 같은 수준으로 제품의 가격을 올리고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눈을 가리고 시음하면 펩시콜라의 맛이 좋다는 사람이 더 많은데도 소비자들은 코카콜라만 찾았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파워'에 절망감을 느꼈다.

고민하던 끝에 펩시는 불리한 처지를 역이용하기 시작했다. 1975년 텔레비전에 한 편의 광고를 내보냈다. 눈을 가리고 콜라를 마시던 사람이 눈가리개를 벗으며 "어~펩시잖아!"를 외치는 것이었다. 입소문이나 이벤트로 인지도를 높이는 '버즈(buzz) 마케팅'을 사용한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코카콜라의 과민 대응에 오히려 펩시의 인지도는 더 높아졌다. 이 광고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코카콜라와 30%가량 차이가 나던 시장점유율은 10%까지 좁아졌다. 펩시는 고무됐다. 70년 만에 1인자 곁에 다가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10%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더 힘들었다. 따라 해도 2등은 되지만 1등이 되기 위해서는 1등보다 뛰어난 것이 있어야 했다.

새로운 것을 찾았다. 젊은 세대를 집중공략하는 '다음 세대의 선택(the choice of next generation)'을 기치로 삼았다. 이 깃발 속에는 코카콜라를 쉰 세대로 밀어 넣는 '브랜드 포지셔닝'이 담겨 있었다. 펩시는 이 브랜드 포지셔닝으로 기성세대를 집중공략하는 코카콜라와 정면 충돌도 피할 수 있었다.

20년을 쏟아 부은 피땀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펩시를 즐기던 청소년들이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나가면서 코카를 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처지는 거꾸로 됐다. 코카콜라는 '이게 진짜(The real thing)'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워 공세를 폈지만 어렸을 때부터 펩시에 길들여진 입맛이 바뀔리 없었다.

이에 힘입어 펩시는 지난 2004년말 매출에서 25%, 총이익에서 10% 코카콜라를 앞섰다. 지난해 말 시가총액마저 코카콜라를 추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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